달걀머리 무크지 준비 모임이 시작되었다. 6개월간 독서와 토론, 그 후 반 년 동안 집필, 편집해서 올해 내 출간이 목표다.
달걀머리는 강의나 독서모임을 판매하려는 의도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세계에 대해 나와 비슷하게 느끼고 공부하고 글쓰고자 하는 동료를 찾으려고 시작한 것이다. 기후위기에 관한 소설과 철학서가 쏟아지는 지금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3~4년 전만 해도 기후 위기에 대해 언급하면 “종말론을 믿으세요?”라며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기후과학자들이 시위를 하고 자살을 하면서까지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야했다. 날씨가 피부에 와닿게 변한 후에야 기후 위기가 정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되었다. 오래 전부터 일종의 기후 우울을 앓았던 나는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얼마나 임의적이고 문화적인 영향에 의해 결정되는지 느꼈다.
소설에서도 그런 면을 느꼈다. 최근 급격히 변하고 있지만, 현재에 뻔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sf로 치부되는 경향은 여전히 남아있다. 소설의 구조나, 문장단위의 RPM이 내게는 현실과 맞지 않아 보였다. 아미타브 고시도 말했듯, 지금 현실을 정말 리얼하게 바라보는 ‘리얼리즘’ 소설은 과연 무엇인가? 연극으로 치면 4막, 5막에 이르러 정신없이 뒷배경이 바뀌고 있는데, 연극 배우들은 아직도 1~3막 대본을 읽고 있는 건 아닐지 하는 의문이 있다. 과거의 유령을 리얼이라는 관념으로 바라보고, 현재 일어나는 일을 오히려 미래로 치부하는 느낌. 그 인식의 갭이 괴로웠다. 인류세에 소설쓰기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살며 무엇을 써야 할까.
1년 정도 달걀머리를 운영했다. 사람이 오면 오고 가면 가는대로, 모임이 이루어지면 하고 사람이 없으면 안 하면서, 편안하게 진행했다. 인스타그램도 도무지 성미에 맞지 않아서 내킬 때만 했다. 이렇게 소극적인 운영이었음에도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생각과 글을 서로 이해하는 동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 두 명을 알게 되면 그 분이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글을 무조건 문단 기준의 ‘완성도’로 재단부터 하기보다, 글의 방향성과 철학을 기초 단계부터 같이 대화할 지속적인 계기와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내면적으로 큰 힘이 되었다.